'언젠가 다소 골치아픈 문제를 끌고 올 것 같은 친구' 그게 흑패 무리가 공유했던 원의 첫인상이었다. 그럼에도 원이 출입하도록 내버려둔 건 기본적으로 흑패가 '도력을 가진 떨거지면 누구나 받아들이는 오합지졸'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원이 가끔 뿌리는 적잖은 돈, 원이 쓰는 부적도 다 무너져가는 도관에 도움이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런저런 현실적 고려...
왜 이리 조급하게……. 한성과의 대화를 일방적으로 끊고 평난후부를 빠져 나왔을 때부터 은호가 스스로에게 던진 의문이었다. 몸은 급히 달려 나가는데 마음은 제 움직임을 이해하지 못해 덜그럭거렸다. 수백년을 수련한 요선에게 마음이 이토록 갈피를 못잡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을 실어준 바람을 재촉해 남문으로 날아갔다. 원이 한채와 ...
원이 채의 정체를 전해 들은 건 채와 마주친 그날 밤이었다. 그날 밤, 채가 떠나고 스승이 바깥에서 그들의 만남을 지켜 보고 있었다는 걸 깨닫자마자 그는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흑패와 자화가 뒤에서 붙잡아 오는 걸 떨쳐내는 사이, 은호의 기척은 채와는 반대 방향 – 평난후부 쪽으로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원은 ‘나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
원이 뛰어 들어간 기와집 안은 몹시 서늘했다. 무너져가는 집 안에 빛이라곤 바닥에 뜬금없이 굴러다니는 구슬 하나뿐이었다. 마치 야명주 같은, 아니……야명주와 비슷하지만. 요괴의 영기였다. 원은 한눈에 빛구슬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그는 4년 전 이와 몹시 비슷한 영기 구슬을, 그것도 다발로 흩어진 걸 본 적이 있었다. 광문이 필사적으로 그러쥐다 작은 요...
산양현에는 작은 성이 있다. 그 성 안에서는 나라도 없다. 연호도 없다. 천자도 없고 황후도 없다. 성 밖에 펼쳐진 천하, 흐르는 세월과 동떨어져서 그렇게 산양현에 도사리고 있을 뿐이다. 작은 성의 주인, 한의 마지막 천자 유협이 위왕 조비에게 선양한 후 이 성에 온 지도 6년째가 되었다. 한겨울 도착한 성에서 네 계절을 다섯 번 맞고 이제 다시 정월, ...
흑패 무리는 아무 말 없이 골목으로 파고들었다. 원은 이들이 이토록 소리 없이 움직이는 걸 처음 보았다. 좁디좁은 2층짜리 도관에서는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며 투닥대던 이들이 지금 이 밤거리에서는 쥐죽은 듯 조용했다. 십여 명이 한 번에 움직이고 있다는 걸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다시 살피니 그들 모두 신발에 소리를 죽이는 주문을 새긴 채였다. 원도 ...
“어딜 가려는 게냐?” 노을이 담벼락 위로 무겁게 깔리는 시간, 은호가 원을 불러 세웠다. 후부 서편 작은 문을 막 나서던 원이 천천히 돌아섰다. 겉옷과 신발, 올려 묶은 머리끈까지 그의 차림은 검정 일색이었다. 한눈에 봐도 나 수상한 놈이라고 알리는 차림이다. “하하, 스승님, 어쩐 일로 이 시간에 이런 장소에…….” “그 말 그대로 너에게 돌려 줘야...
“현명한 부친이시군, 현명한 부친이셔. 부친 말씀이 딱 맞네. 예끼, 어디 감히 도사가 되려 해?” 다 쓰러져가는 도관의 땅딸보 관장 – 흑패가 탁상을 두들기며 박장대소했다. 퉁퉁한 그의 손이 탁상을 칠 때마다 풀썩풀썩 먼지가 날렸다. 원은 흑패를 곁눈으로 째려보면서도 행주를 찾아와 탁상을 닦았다. 손님인 원이 흑패와 그 제자들이 너저분하게 어질러 놓은...
늦가을 스승만 대동한 채 여행을 떠난 평난후의 장자는 한 달을 조금 못 채워 후부로 돌아왔다. 수행원 없이 나선 길 노독이라도 들까 염려하던 방이가 무안해질 정도로 강녕한 모습이었다. 행동거지도 그새 퍽 숙성해서, 노마님은 손자의 성장을 반기면서도 착잡해했다. “사람은 정말 너무 빨리 어른이 되는구나.” 세월의 무상함을 탓하는 것과는 결이 다른 한탄이...
상록의 영기를 삼킨 어린 요괴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광문의 흔적도 산 중턱에서부터 끊겼다. 그들이 어디로 향했는지는 하늘도 땅도 모를 일이었다. 은호는 동편 하늘이 어슴프레 밝아오자 수색을 포기했다. 그 사이 그의 제자는 엉망이 된 상록의 묘를 – 묘 역할을 했던 바위 조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애초에 인간의 묘 같은 게 아니라고, 이제 상록의 영기마저 ...
까맣게 스러졌던 의식이 돌아오고 처음 느낀 건 매서운 바람, 바람결에 들려오는 거친 목소리였다. 듣는 사람의 귀를 파는 쇳소리에 원망이 가득 담겨 있었다. 흐릿한 의식에도 분명 느낄 수 있는 광기가 있었다. 원은 가물가물한 정신으로 광문의 비웃음을 들었다. 영약 주머니, 양기, 10년 전의 부상, 평난후……. - 아, 그래서 스승님이……. 그래서 나를...
결국 싸움을 시작했지만 은호는 무작정 덤빌 마음은 없었다. 그는 어쨌든 원이 무사히 돌아가기를 바랐다. 아이가 돌아가려면 적어도 이 산은 무사히 벗어날 수 있어야 할 터였다. 아이가 산을 벗어날 때까지 광문을 묶어둘 수 있다면. 그는 바람으로 광문이 두른 연기를 흩어버리는 한편, 원을 반석 아래로 끌어내렸다. 원은 아직도 의식이 없었다. 은호는 잠시 원과...
동양 사극 기반 vs 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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